청일전쟁 시기 조선 정치지도자의 대외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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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12-2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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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일 김우용이 올린 상소에는 청을 “적국”으로 표현하고 방어를 잘해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변경의 수비를 강화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고종은 내각에서 논의해 처리할 것을 지시했다. 즉 조선은 자주독립국이었는데 청의 간섭을 받아 나라의 권위가 손상 당했지만 고종이 청에게 추종하던 관습을 제거해서 자주독립의 기초를 확립했다는 것이다. 위의 책, 14-16쪽.
고종은 1895년 1월 7일 홍범 14조 유영익은 홍범 14조가 이노우에(정상)공사와 유길준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반론을 제기했다. 첫째 이노우에의 ‘20개조 내정개혁안’의 내용이 ‘홍범’과 다르며, 둘째 ‘홍범’…(생략(省略))
1895년 1월 5일 내무아문은 명령을 발표해 청과의 종속관계를 단절한다는 것을 공식 선언했다. 즉 조선은 자주독립국이었는데 청의 간섭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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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시기 조선 정치지도자의 대외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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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1월 5일 내무아문은 명령을 발표해 청과의 종속관계를 단절한다는 것을 formula(공식) 선언했다. 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리조실록』392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91), 4-5쪽.
국시는 다름 아닌 청과의 관계를 끊고 독립을 유지하는 것인데 이를 어긴다면 반역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1895년 1월 5일 내무아문은 명령을 발표해 청과의 종속관계를 단절한다는 것을 公式 선언했다. 그런데 당시 명령문에서 중요한 것은 “국시”를 어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정치엘리트 중에서는 청을 “적국”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즉 조선은 자주독립국이었는데 청의 간섭을 받아... , 청일전쟁 시기 조선 정치지도자의 대외인식인문사회레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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