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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은사(隱士)들의 공간 -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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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2-02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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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 우리는 공간의 지리적 特性과 문학을 연계함으로써 그 시선의 흐름을 공간으로 확장해 보려는 시도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도 하나의 文化(문화)양식이므로 당연히 지역적 特性에 의거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여기에서 지역적 特性이란 자연지리적 여건일 수도 있고 역싸적 environment(환경) , 또는 입지적 特性일 수도 있따

ⅱ. 운곡 원천석의 문학 세계

동국대 한국 문학 연구소,『한국 문학 지도 上』, 계몽사, 1996
다. 그것은 인간의 생존에 보다 적합한 environment(환경) 을 찾자는 것으로, 더 나은 삶을 꾸려나가려 했던 노력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본 논고의 취지가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이제껏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는 사실에만 주목을 해왔다.
황패강, 『한국문학작가론/2:조선시대의 작가, 1』, 집문당, 2000






安炳鶴, 「李達의 詩世界에 있어서의 束縛된 自我와 그 變奏」, 『泰東古典硏究』, 춘천: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1984
Ⅳ. 지역적 특색과 문학의 연계성

원주시사 편찬위원회, 『원주시사』역싸편, 대양출판사, 2000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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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A 외 3인, 「기온 - 바람 - 기압과 행동」, 『environment(환경) 심리학』, 이진환 - 홍기원
Ⅰ. 서론


Ⅰ. 서론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중환은 사람이 살만한 可居地를 찾기 위하여 『택리지』를 저술하였다. 중요한 점은 인간의 행동이 environment(환경) 의 맥락 안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라면 environment(환경) 의 차이는 인간의 생활양식이나 文化(문화)양식에 차이를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지명이 낮추어졌으나 공민왕(恭愍王) 2년에 치악산(雉岳山)에 공민왕의 태(胎)를 안치함으로써 다시 원주로 승격되었다. 동시에, 보다 적합한 environment(환경) 을 찾는다는 것은 environment(환경) 이란 것이 다분히 差別화 되어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ⅱ. 역싸적 배경

ⅰ. 자연지리적 特性
현재 원주는 치악산 국립공원을 중심으로 영서 지방 교통의 분기점이다. 이 장에서는 강원도의 원주(原州)라는 공간을 통해 이러한 공간의 확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은 종래의 문학에 대한 시선이 다분히 사적 흐름에 치중한 線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Ⅱ. 원주의 지역적 特性
Ⅲ. 손곡 이달과 운곡 원천석, 그리고 박경리의 문학 세계

이러한 의문을 제시하며 과연 그러한 지역적 特性이 실제 문학에 어떠한 방식으로 影響을 미치고 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원주의 자연environment(환경) 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한 책은 조선전기의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의 『택리지』가 있따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치악산이 靈山이어서 求道를 하는 隱者들과 도를 닦는 스님뿐 아니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인재들이 치악산에 찾아들어 숨어 살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Ⅱ. 원주의 지역적 特性
ⅰ. 자연지리적 特性
레포트 > 사회과학계열
순서

ⅰ. 손곡 이달의 문학 세계

이중환, 『택리지』, 良友堂, 1994
^^
[교양] 은사(隱士)들의 공간 -원주
원주, 문학, 박경리, 지역, 강원도, 손곡이달, 손곡, 원천석,토지
원주시, 『치악의 향기』, 원주시, 1990
ⅲ. 박경리의 문학 세계

참고reference(자료)



^^
李鍾澯, 『韓國漢詩大觀 8』, 2001, 이회文化(문화)사

Download : 원주.hwp( 43 )


황패강 외『한국 문학 작가론 4』,집문당, 2000

원주는 본래 고구려의 평원군(平原郡)이었으며 고려 태조 23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개정되었다. 또한 『택리지』에서는 원주가 ‘사대부들이 즐겨 살았던 곳’이라고 하였다. 이 곳에서 동쪽으로는 제천, 영월, 단양이 열렸으며, 북으로는 평창, 대관령, 남쪽으로는 횡성, 홍천, 춘천에 연결되어 있으니 교통의 중심지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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