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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지주 마을, 양동리 민속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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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8-12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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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지주 마을, 양동리 민속 마을과 오어사에 대상으로하여 작성했습니다.
레포트/인문사회

조선의 지주 마을, 양동리 민속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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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2. 대대로 외손이 번성하는 마을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터가 역대로 외손(外孫)들이 번성하는 마을이라는 점이다.

회재 이언적은 외가인 손씨의 대종가에서 출생하였는데 이와 관련하여 흥미있는 이야기가 있다아 손소의 집터를 잡아 준 지관이 기름진 땅에서는 큰 인물이 나지 않는다며 물매 사나운 현재의 산비탈 자리를 정해 주었다. 그리고 손소는 슬하에 5남 1여를 두었는데 그 딸이 여강 이씨 이번(李蕃)에게 출가하여 두 아들을 낳았고 그 중 맏이가 회재 이언적으로 여강 이씨의 큰 뿌리가 된다된다. 풍덕 유씨는 일찍이 절손되었고 지금은 여강 이씨와 월성 손씨의 동족 마을인데 실제로 근거가 분명한 입향조(入鄕祖)는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 공을 세운 손소(孫昭)로 밝혀진다. 그는 520여 년 전 장인인 풍덕 유씨 유복하(柳復河)의 상속자로 들어와 지금의 월성 손씨 종가를 지었다. 고려시대에는 오씨에서 장씨로 조선시대에는 풍덕 유씨에서 월성 손씨로 그리고 다시 여강 이씨로 그 맥이 이어진다. 그것이 이른바 양동마을의 물(勿)자형 혈맥이 맺힌 곳으로 삼현선생지지(三賢先生之地)라는 것. 지관은 이 집터에서 세 사람의 위대한 인물이 태어…(省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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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지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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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지주 마을, 양동리 민속 마을과 오어사에 대해서 작성했습니다.


다.
REPORT 11(sv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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