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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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12-1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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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5년 후백제의 왕실내분으로 왕위에서 축출된 견훤을 개성으로 맞아들여 극진하게 대우하였으며, 또 같은해 10월에는 신라왕의 자진항복을 받게 되 었다.
태조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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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년 태조는 고창(古昌: 지금의 안동지방) 전투에서 견훤의 주력부대를 대 파함으로써 비로소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였다. 이로써 후삼국통일의 주역이 될 가능성이 확실하여졌다. 능은 현릉으로 그이 제 1비 신혜왕후 유씨가 함께 묻혀 있다
■ 훈호십조
태조는 후삼국의 통일을 이루며 통일 국가인 고려의 안전을 위해 죽기 얼마 전에는 대광(大匡) 박술희(朴述熙)를 내전으로 불러들여 〈훈요십조 訓要十條〉를 친수(親授)하여 그의 후계자들이 귀감으로 삼도 록 부탁하였다.
〈훈요십조〉의 내용은
첫째, 불교를 진흥시키되 승려들의 사원쟁탈을 금지할 것.
둘째, 사원의 증축을 경계할 것.
셋째, 서열에 관계없이…(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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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935년 후백제의 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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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930년 태조는 고창(古昌: 지금의 안동지방) 전투에서 견훤의 주력부대를 대 파함으로써 비로소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였다.
마침내, 936 년 왕실내분으로 혼란한 후백제와 일선군(一善郡: 지금의 善山)의 일리천(一利川)을 사이에 두고 최후결전을 벌여 후백제를 멸하고 후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천하의 왕건 태조도 943년 5월에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떳다. 935년 후백제의 왕실... , 태조왕건인문사회레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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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년 태조는 고창(古昌: 지금의 안동지방) 전투에서 견훤의 주력부대를 대 파함으로써 비로소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였다.